왕건은 왜 이 땅을 韓山이라 불렀는가
페이지 정보
고유명수 작성일26-05-31 18:10 조회19회 댓글0건본문
왕건은 왜 이 땅을 韓山이라 불렀는가
한산이씨 30대손 이명수
940년, 고려 태조 왕건이 전국 지명을 개편했다. 수천 개의 땅 이름이 바뀌었다. 그런데 딱 한 곳, 민족의 이름 韓을 행정구역 이름으로 받은 땅이 있었다. 충청남도 서천, 지금의 한산(韓山)이다.
왜 이 땅인가.
큰 산이 있는 땅 — 공식 해석의 한계
공식적인 해석은 단순하다. 큰 산(大山)이 있는 땅이라서 韓山이라 했다는 것이다. 韓을 크다는 뜻으로 읽은 것이다.
그런데 이 해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있다. 조선 팔도에 큰 산이 있는 땅이 어디 한두 곳인가. 왜 유독 이 땅만 韓이라는 이름을 받았는가.
기벌포 — 역사가 겹치는 땅
한산 앞바다는 기벌포(伎伐浦)다. 백강(白江)이라고도 불렸다.
663년, 이 바다에서 백제의 마지막 불꽃이 꺼졌다. 백제 부흥군과 왜군 4만이 나당연합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. 패했다. 백제는 그렇게 끝났다. 유민들은 흰 옷을 입고 소곡주를 빚으며 한을 달랬다. 그 술이 지금도 한산에서 빚어지는 한산소곡주다.
그리고 676년, 같은 기벌포에서 신라가 당나라 수군을 격파했다. 삼한일통의 완성이었다.
왕건은 이 땅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. 백제의 한이 서린 땅, 삼한통일이 완성된 땅. 왕건이 스스로 **삼한일통(三韓一統)**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운 인물이라는 것을 떠올리면, 이 땅에 韓이라는 이름을 준 것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었을 수 있다.
세 가지 층위
왕건이 韓山이라 명명한 이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층위가 겹쳐있다.
첫째, 포용의 선언이다. 왕건은 후백제를 흡수하면서 백제계 세력을 포용해야 했다. 백제의 마지막 항전지에 韓이라는 이름을 준 것은 그 한(恨)을 인정하고 품겠다는 선언이었을 수 있다.
둘째, 삼한일통의 완성이다. 신라가 기벌포에서 삼한을 통일했듯, 고려도 이 땅에 韓山이라는 이름을 새기며 자신의 삼한일통을 선언했다. 삼한의 韓이 이 땅에 살아있다는 뜻이다.
셋째, 뿌리의 인정이다. 이 땅에는 오래된 토착 호족이 있었다. 세종실록지리지가 한산 가장 오래된 토성으로 기록한 가문, 한산이씨다. 마한 → 건마국 → 백제를 거쳐 이 땅에 뿌리내린 계통. 그 뿌리를 거슬러 오르면 동명왕 → 단군 → 환웅 → 환인까지 닿는다. 왕건은 그 계보가 살아있는 땅에 그 계보에 걸맞은 이름을 준 것이었을 수 있다.
韓山이라는 두 글자
韓山. 크다, 산. 큰 산.
그런데 큰 산의 신은 단군이다.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이다. 환인이 내려 보낸 하늘의 뜻이다.
王建이 이 두 글자를 이 땅에 새겼을 때, 그는 수천 년의 계보가 살아있는 땅임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.
문헌에 직접 기록은 없다. 그러나 역사적 맥락은 이 방향을 가리킨다. 기벌포의 역사, 삼한일통의 이념, 이 땅의 오래된 뿌리.
세 가지가 한 점에서 만나는 땅. 그것이 韓山이다.
이 글은 역사적 맥락에 기반한 가설적 탐구입니다. 한산이씨 30대손의 개인 연구 기록입니다
추천 0
댓글목록
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.

